2011년 4월 20일 수요일
디스트릭트9 단평
디스트릭트9은 SF영화지만 현실의 반영이다. 외계인을 격리하다가 사회문제가 되니깐 다른 곳으로 강제이주 시키는 것도 그렇고, 그들의 첨단 무기기술에 인간들이 탐을 내어 어떻게든 주인공 바커스를 생포해 그를 실험할려는 것도 그렇고, 자신들의 이익과 목적을 위해서는 인권이니 뭐니 하나도 생각하지 않는 천박하고 야만적인 나라들과 기업들...
딱, 그들의 모습이 영화안에 들어있다.
소수민족에 대한 억압이 만연한 나라에 이영화를 대입하면 현실처럼 딱 맞아 떨어진다는 사실이 슬프다. 영화속 배경이 남아공이 아니라 우리나라라도 어색할 것이 없다는 사실은 더 가슴아픈 일이고.
2011년 1월 24일 월요일
허트 로커 - 전쟁영화 같지 않은 전쟁영화
블랙호크 다운이나 플레툰, 지옥의 묵시록, 디어헌터 같은 전쟁영화와 허트로커는 질감이 다르다.
총알과 폭음이 난무하는 그런 전장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탁월한 심리 묘사를 통해 전쟁속의 고뇌하는 한 인간을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그래서 허트 로커의 이라크는 다른 영화의 전장에 비해 조용하다.
이부분이 일반적인 전쟁영화 들과 허트 로커가 비교되는 지점이다.
캐서린 비글로우 감독은 전쟁 보다는 EOD팀의 폭발물 제거 전문가 윌리엄 제임스 중사의 시점으로 전쟁이 주는 폐해에 대해 말하고 있다.
전쟁이 사람을 얼마나 파괴하고 몰락시키는 가를...
핸드핼드 카메라의 사용을 통해 불안한 캐릭터의 심리묘사를 밀도있게 그려냈고, 캐릭터의 심리도 섬세하고 탁월하게 그려냈다.
일반적인 쟝르 영화에 식상하고 새로운 경험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특별한 선물이 될 만한 영화.
2009년 9월 21일 월요일
블랙 - 뻔하지만 감동할 수 밖에 없는 이야기
단조로운 스토리를 어떻게 풀어내느냐가 관건이었을텐데 감독은 아주 영리한 방법으로 영화를 완성시켰다. 전반부의 사하이와 미셸의 만남, 미셸이 단어의 의미를 깨닫기까지의 과정은 퍽 감동적이다.
이야기의 단조로움을 극적인 플롯들로 채워서 영화가 생동감 넘친다. 고풍스런 인도의 상위층 인테리어도 멋들어지고, 음향효과와 음악도 지루하지 않게 배치되어있다.
배우들의 연기력도 훌륭했고, 영화의 속도도 지루하지 않다. 다만 전반부의 흥미진진하고 인상적인 캐릭터들이 후반으로 갈수록 힘을 잃고 스토리는 지나치게 늘어진다. 특히 장애인 영화가 가지고 있는 [인간극장]식의 '핸디캡 극복기'가 가지고있는 지나친 신파조의 메세지들이 후반에 거북스럽게 배치되어 있다.
차라리 사회적인 부분들과 부모들의 고충같은 것들을 더 광범위하게 건드렸으면 훌륭한 영화가 되었을 것이다.
부자연스럽고 작위적인 설정에도 불구하고 이야기가 힘을 얻고 설득력을 갖는건 두 주연배우의 힘이 크다. [사하이]역의 아미타브 밧찬은 인도에서 슈퍼스타이상의 아우라를 갖춘 배우로 인도뿐만 아니라 영국에서도 유명하다. 어린미셸역의 아예샤카푸르와 성인미셸역의 라니무커르지의 신들린듯한 연기도 발군.
인도영화는 우리에게 아직은 익숙하지 않은데, 블랙으로 인해 인도영화의 가능성과 위력을 새삼 실감했다고 할까. 물론 질적비교로는 어떨지 모르지만, 발리우드가 양적으로는 헐리우드를 능가하는 영화편수를 제작한다고 하니, 인도의 파워는 무섭다.
2009년 6월 11일 목요일
영화 [마더] - 불편한 진실?
영화 [마더]도 다르지 않다. 비록 모정이 빚은 비극에 촛점이 맞추어져 있지만, 여전히 감독은 돈만 밝히고 정의감 없는 변호사들의 모습과 지식인들의(교수들) 비도덕성을 실날하게 꼬집고 있다.
영화의 플롯은 단순하지만 그 층위는 주인공 혜자의 믿음과 유일한 목격자인 노인의 목격담중 관객이 누구의 말을 신뢰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계속스포일러 포함
전자를 믿는다면 영화는 무고한 아들을 지키기 위한 어머니의 처절한 탐정극이 될것이요, 후자를 믿는다면 어머니의 광적인 집착과 과도한 사랑이 빚어낸 비극이 되는 것이다. 감독은 불친절하게도 이에 대한 어떠한 정답도 내놓지 않고 있다. 살인의 추억에서도 그랬듯이 사건은 여전히 미궁인채로 남는다.
주위의 어머니와 아들의 성적인 상징과, 진태와 엄마와의 묘한 관계도 궂이 친절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나는 봉준호 감독의 이러한 의도된 불친절함과 찝찔한 엔딩, 거북하고 불쾌한 풍자가 좋다. 세상은 불친절하고 거북한 일도 있으니까, 그런면에서 봉준호 감독의 영화는 세상과 닮아있고 참으로 정직하다.
2009년 5월 4일 월요일
똥파리, 슬럼독 밀리어네어, X맨 탄생 - 울버린
절절하고 치열하게 써내려간 어느 양아치와 그 가족에 대한 이야기, 과장도 영화적 댓구도 없는 빠른 전개와 극으로 달리는 스토리, 영화적 재미를 위한 약간의 작위적인 설정과 과도한 감상적 씬이 없지않았지만, 그래도 감독의 진심이 그대로 관객에게 전달되어지는 생생하고 끈끈한 영화다.
양익준 감독이 이영화를 아무것도 모르고 만든 영화라고 하는데, 내 생각엔 스토리가 직선적이긴 하지만 곳곳에 깔려있는 설득력은 탁월하다고 생각한다. 이건 순전히 감독의 비범함에서 나온것이라고 밖에 생각 할수 밖에 없는 고로, 양익준 감독은 상당히 영민하다. 올해의영화가 될만한 수작.
이영화, 역시 대니보일 답다. 빠른 전개와 치밀한 스토리, 적절한 유머, 긴 여운. 쟝르적 카테고리안에서 신선한 소재를 발굴해내고, 그걸 대중적인 상품으로 잘 빚어냈다.
각색의 힘이 느껴지는 영화다. 2005년 발표된 [비카스 스와루프]의 동명소설을 각색했는데, 영화만큼 소설이 재밌을까 싶을 정도로 영화적 재미는 탁월하다.
흠잡을 것 없는 대중영화.
누가 감독했는지도 모르고 엑스맨 영화인것만 믿고 봤던 영화. 여전히 볼거리도 많고, 지루해질라치면 빵빵 터지는 액션이 볼만한데, 울버린에 대한 캐릭터 묘사는 좋았으나, 울버린의 형제인 세이버투스의 묘사는 설렁설렁 넘어가서 좀 아쉽다.
기본적으로 마블엔터테인먼트의 영화답게 만화적 재미를 충실하게 영상으로 재현해냈다. 뮤턴트(돌연변이)들의 개인기는 언제봐도 재미있다.
엑스맨의 탄생: 매그니토도 제작되었다는데, 재밌을것 같다.
개봉전에 동영상이 유출되어 한바탕 난리가 났던 영화인데 이런걸 극장에서 보지않으면 어떡하나? 스케일이 큰 영화는 확실히 극장에서 봐줘야 제맛!
2009년 3월 15일 일요일
프로스트 VS 닉슨
물론 캐릭터가 힘을 갖게되는 것은 닉슨으로 분한 프랭크 란젤라의 힘이 크지만 감독의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시나리오도 캐릭터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영화의 얘기는 워터게이트 사건이후 권좌에서 물러난 전직 대통령을 한물간 MC 마이클 프로스트가 거액의 돈을 지불하고 인터뷰를 따내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호주에서 MC를 하다가 뉴욕의 방송사로 복귀하기를 꿈꾸는 프로스트와 인터뷰를 통해 정계 복귀를 노리는 닉슨. 이둘의 대결에서 결국은 한명은 패배할 수 밖에 없는 상황.
수많은 권모술수의 정치권이란 정글에서 승자가 된 적이 있는 지능적이고 고집스럽지만 치밀한 닉슨에 비해 마이클 프로스트는 아마츄어 같아 보인다. 놀기 좋아하고 여자를 밝히며 그저 인기와 돈에만 관심이 있는 3류 방송인. 하지만 그는 닉슨과의 전화통화를 통해 자신이 인터뷰에서 닉슨을 이기지 못한다면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질 것임을 알고 닉슨이 워터게이트사건을 인정하고 사과하게 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달려든다.
이 영화는 닉슨을 교활하고 저열한 정치인으로 그리기보다는 복합적이고 다중적인 성격으로 묘사한다. 가정적이고 아내를 사랑하는 한 가정의 가장이긴 했지만 권력을 쟁취하기위해 불법을 자행한 인물이기도 했고, 자신의 주장에대해 독선적인 성격이지만 영리하고 유머러스하고 훌륭한 정치적 재능을 지닌 인물이라는 것 말이다.
인간의 성공과 한순간의 몰락, 패배뒤에 오는 쓸쓸함을 프로스트 VS 닉슨은 잘 그려내주고 있다.
2008년 10월 20일 월요일
미쓰 홍당무
이경미 감독은 이시대의 멸시당하는 위치의 여성 캐릭터를 훌륭하게 완성시켜 놓았다. 때때로 엉뚱하긴해도 측은해 할 수 밖에 그런 소박한 우리의 누이, 혹은 친구를 말이다. 또한 그런 양미숙을 훌륭하게 연기해낸 공효진의 공로는 영화의 반이상을 차지할만큼 탁월하다고 생각된다. [임순례], [변영주]감독을 이을 훌륭한 여성감독의 등장을 반기며 앞으로의 영화를 기대한다.
2008년 8월 21일 목요일
다찌마와리 -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
2000년 인터넷에 공개된 35분짜리 "다찌마와 리"가 60~70년대 한국액션영화에 대한 오마쥬이자 진지한 시대에 바치는 비장한 코메디 였다면 극장용 장편으로 재 탄생한 "다찌마와 리"는 보다 스케일이 크고 다양한 캐릭터가 어울리는 코메디 한마당으로 재탄생 했다. 가볍고 작위적인 설정의 의도적인 B급 액숀영화 치고는 액션의 완성도가 너무 높다는것 빼고는 코메디 영화로서 손색없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다찌마와리만 봐도 영화의 완성도를 높이는 것이 자본으로만 가능하다는게 아니라는 사실이 여실히 증명된다. 문제는 아이디어와 각본이다. 이 호방한 액숀영화는 그래서 참 대단하다. ^^
2008년 8월 11일 월요일
다크나이트
태생은 히어로물이지만 다크나이트는 기존 영화들과는 다른 지점에 위치해 있다. 바로 배트맨의 절대선에 대한 인간적 고민이 바로 그것.
영화에서 브루스 웨인은 자신이 정의감의 발로로 행했던 일들에 대해 갈등한다. 그가 악당들을 처단하고 응징하는 역활을 하고 있지만 결국 그도 합법적인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아닌 불법적인 방법으로 정의를 구현한다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 것이다.
이것은 비단 배트맨만의 문제가 아닌 바로 고담시 전체의 문제요 더 확장하자면 우리가 살고있는 이 사회의 문제이기도 하다.
기존의 배트맨 영화와 전혀 다른 영화라는게 바로 이 점이다. 영화 배트맨이 던지는 질문은 바로 고담시라는 이사회의 부조리와 폭력에 대한 것이다.
그리고 정의가 불법으로 행해지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대차게 묻고 있다. 현 미국사회의 모습이 고담시와 브루스웨인에게 투영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지나친 생각일까?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감을 늦추지 않는다. 액션이 느슨하다 싶을땐 부르스웨인의 갈등과 하비덴튼의 고민으로 긴장을 늦출수 없고 영화의 강력한 히로인으로 존재하는 히스레져의 조커의 캐릭터도 잘 살아있어서 관객이 스크린에서 시선을 때지 못하도록 잡아끈다.
히스레져는 극악하고 교활한 조커라는 캐릭터를 아주 멋지게 소화해냈다. 배트맨 영화는 한국에서 성공하지 못한다는 공식을 보기좋게 깰수 있을듯.
2008년 7월 6일 일요일
나니아 연대기 - 캐스피언 왕자
출간 50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나니아 연대기]는 판타지 문학의 바이블로 9500만부 이상 팔렸습니다. 즉 최소한 9500만이상은 이 기독교 상징이 가득한 “짜증나는 기독교 상징”에 의식화 되었다는 말이 되겠지요.
원작을 읽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책에 대해서 할말은 없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흥미진진 합니다. 전편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이 책을 읽은 사람들에게는 좋은 평가를 얻었지만 그 이외의 사람들에게는 별로 좋은 평가를 얻지 못해서 그다지 기대를 안했거든요. 영화내내 긴박한 장면장면이 이어지고 특수효과로 무장된 웅장한 전투씬이 등장하는 [캐스피언 왕자]는 멋진 볼거리를 제공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의 최대 약점은 내러티브에 있습니다. 원작에서 가장 중요한 아슬란의 존재에 대한 설명이 충분하지 못합니다.
예수그리스도로 상징되는 아슬란의 존재는 나니아와 텔마린과의 마지막 전투에서 그저 쌩뚱맞게 등장할 뿐입니다. 아슬란(예수 그리스도)의 “완빵에 구원” 이라는 통쾌한 결말은 다분히 성경적이고 크리스챤의 입장에서는 환영할 만한 일입니다. 모든 분쟁과 갈등, 폭력과 전쟁이 아슬란(예수 그리스도)으로 인해 해결되니까요. 하지만 그 수많은 폭력과 전쟁이 일어나는 도중에 아슬란은 무엇을 했는가?에 대한 이야기는 거세되어 있습니다.
그냥 루시가 찾아가기 이전에는 아슬란은 숲속에서 게으르게 잠만 자고 있었을 것 같이 묘사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제가 아는 예수님(아슬란)은 그런 분이 아니거든요. 끊임없이 고통받고 있는 우리를 위해 함께 아파하고 슬퍼하고 해결점을 찾아주시기 위해 노력하시는 분이란 말입니다.
현장의 하나님이 빠져 있는 [캐스피언 왕자]는 그래서 실망스럽습니다. 듀나의 지적처럼 원작의 아기자기 하고 동화적인 매력을 잘 살리지 못한점도 아쉽습니다. [나니아 연대기]는 어린이들을 위한 동화입니다.
흥행노림수로 인해 전투씬은 확장되고 지나치게 부풀려져 있습니다. 아이러니 하게 이것이 바로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이기도 합니다만. 영문학자이자 신학자이며 최고의 기독교 변증가인 C.S루이스의 기독판타지를 스크린에 옮긴 영화를 한번쯤 보는것도 의미있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영화에 나타난 희생, 구원등의 기독교 상징들을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고요.
2008년 5월 13일 화요일
스피드 레이서 - 가족 VS 거대자본
나는 이영화를 가족VS거대자본의 대결로 보았는데, 영화의 가장 핵심적인 갈등요소가 거대그룹[로열튼]과 스피드 레이서의 [가족]이기 때문이다.
스피드가 로열튼 회장(로저 앨럼)의 스카우트 제의를 거절하기전까지는 아무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그 거절이 로열튼 회장의 분노를 사면서 스피드 가족에게 위기가 닥친 것이다.
스피드는 아무런 잘못이 없는데 로열튼의 완력에 의해 가족이 운영하는 회사의 주가는 추락하고 스피드는 이에대한 보복을 하기위해 태조와 레이서X와 손을 잡고 죽음의 경주 "카사크리스토 5000"에 출전한다.
로열튼 회장과 그를 추종하는 무리들은 레이싱을 "산업"이라고 주장한다. 레이싱은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라 자본의 논리에 의해 지배당하는 하나의 산업일 뿐이라는 얘기는 스피드로 인하여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데 이는 그의 가치관이 레이싱을 자신의 꿈과 열정을 쏫아 붓는 스포츠이자 직업을 넘어선 존재이유로 규정하기 때문이다. 그는 거대그룹 로열튼의 힘에 짓눌려 그는 절망하게 된다.
그러나 결국은 자신의 목적을 성취하고 반면 레이싱을 자신의 회사의 이익과 홍보를 위해 이용하고 심지어는 승부조차 조작했던 로열튼의 모든 계획은 좌절되기에 이른다(전형적인 권선징악의 스토리가 원작이 만화라는 걸 세삼 실감하게 한다).
이점이 영화 스피드 레이서에서 주목해서 봐야할 부분이다.
제도적 부조리에 저항하고, 자신의 존재이유가 무엇인지 명확히 알고 행복해지기 위해 자신을 투신하는 것.
아이들의 꿈과 희망은 폐기된채 성장이데올로기에 지배당하는 시대, 개발과 발전이라는 키워드가 세상을 지배하는 이 시대에 영화 [스피드레이서]에서 주인공 스피드의 로열튼에 대한 저항은 그런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2008년 4월 20일 일요일
식코 (Sicko 2007)
극장안에서 키득키득 웃는 사람들이 여럿이었다는 걸 보더라도 이 영화는 그저 미국의 의료보험제도를 지루하게 나열하기만 하는 그런 식의 영화는 아니다.
전반부에는 의료보험의 피해자, 의료보험회사의 정치적 로비로 정치인들을 매수하여 정책을 유지케 하는 수법들을 보여주고, 양심적인 보험회사의 의료이사진의 이야기를 통해 의료보험 회사의 존립 목적이 보험가입자의 생명보호와 건강증진에 있지는 않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폭로한다. 보험료 청구자를 서비스 받지 못하도록 얼마나 떨어뜨리냐에 따라 의료심사원의 연봉이 차등지급되는것을 보여주는 대목은 섬찟한 사실이다.
후반부에는 영국의 NHS와 프랑스의 의료보험제도, 쿠바의 의료보험제도를 보여줌으로써 어떤 정책이 국민들을 위한 의료보험정책인지 관객들에게 묻는다.
많은 사람들이 소득재분배에대해 찬성하지 않을지 모른다. 왜냐면 병원에 별로 가지 않는데도 당장 자기가 돈을 매달 지불하니까. 하지만 내가 건강하더라도 우리 아버지들이 받은 의료혜택과, 내 자식들이 받을 의료혜택등을 생각해보면 내가 내는 보험료가 과연 비싸고 가치가 없는 것일까?
이어지는 내용
공적보험은 "나"를 기준으로 계산하고 생각하면 분명 손해다. 하지만 "우리"라는 개념으로 접근한다면 이보다 더 좋은 제도도 없는것이다.
공적보험이 바로 "우리"를 위해 만들어진 것들 이기 때문에 그러하다. 마이클 무어는 그래서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미국이 사회주의적 이라고 비난하는 사회의료보험제도가 그렇게 나쁜것이요?"
또한, 구급구조원들이 9.11사건에 봉사를 하고도 의료서비스를 보장받지 못하는 현실을 보여줌으로써 미국의 시스템 자체가 얼마나 이율배반적인지 보여준다. 9.11사건 당시 소방관들과 구급구조원들을 영웅으로 치켜세워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뒤로는 그들을 외면하고 천대했다는 사실은 미국의 이중성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마이클 무어는 이들을 관타나모로 데려간다. 그리고 관타나모의 수용소 앞에서 "그곳에 있는 테러리스트 만큼만 의료서비스를 받게 해달라"고 적들에겐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받게 해주면서도 영웅이라고 치켜세우던 구조원들은 천대하는 미국 시스템에 대한 시위인 셈이다.
그후 미국이 그렇게 싫어하는 쿠바로 가서 그곳의 의료보험 시스템 안에서 이들을 치료해 주는 것을 보여준다.
그는 영화안에서 이런 이야기를 한다. "국민이 정부를 두려워 할때 국민을 위한 제도는 만들어 지지 않는다. 정부가 국민을 두려워 할때 국민을 위한 제도가 만들어진다"라고 그러면서 프랑스의 수많은 단체와 국민들의 시위 현장을 보여준다. 정말 그렇다. 정책을 입안하고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들께서 그들에게 후원금을 지불하고 로비를 하는 상위 1%안에 있는 대기업이나 단체를 위해 움직일지, 힘없고 돈없고 빽없는 서민들을 위해 움직일지 생각해보면 쉽게 답이 나오는 것이다.
영화 식코(Sicko 2007)는 미국식 의료보험제의 민영화를 준비하고 있는 2MB 정부의 시도가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인지 잘 말해주고 있다.
민영화가 된다면 보험회사는 좋고 돈 많은 사람은 좋다.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자기네들은 받을 수 있으니까 그렇지만 서민들은 한마디로 "아프지 말아야 한다".
2008년 3월 9일 일요일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 잔혹한 시대의 잔혹한 사람들
그는 그후 죄책감에 물통을 들고 다시 현장을 찾아가지만 그 현장에서 죽음의 위협을 받게 되고, 마약 판매상이 고용한 안톤 쉬거라는 싸이코 킬러로 부터 추격을 당한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쟝르영화의 공식을 따르지만 쟝르영화의 공식에서 자유로운 영화 이기도 하다.
쫓고 쫓기는 기본적인 골격이 쟝르영화의 틀에 얽매여 있다면, 곳곳에 불쑥 불쑥 튀어나오는 무섭지만 유머스럽기 까지 한 싸이코 킬러 [안톤 쉬거]의 요상스런 행동과 얼굴은 이 영화가 스릴러에만 충실한 영화가 아님을 보여준다.
역시 코엔 형제라는 감탄이 나오는 것은 적막과 고요뒤에 이어지는 긴박하고 급박한 전개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엄청난 속도로 달려오는 자동차를 피해 달아나는 [모스]의 도망 씬에서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총격전에서 부상을 당한 모스가 미국 국경을 너머 멕시코로 도망가는 도중 만난 청소년과의 씬에서도 보석과 같이 빛난다.
옆구리 부분에 피가 흥건한 상태로 도로 가를 걷고 있는 모스를 의심의 눈초리로 보는 세명의 청소년들에게 모스는 그들중 한명의 점퍼를 많은 금액을 요구하며 팔것을 요구하는데 그들은 선뜻 점퍼를 판다. 그리고 나서 마시고 있던 맥주 한병도 달라고 요구하자 청소년들은 "얼마를 줄건데요"라고 되묻는다. 이 장면에서 코엔 형제식의 반짝이는 블랙유머가 삽입되는 것이다.
관객들은 자뭇 비장하고 심각한 주인공의 상황에 몰두해 있다가, 갑작스런 그런 우스꽝 스러운 장면을 만나면서 풋! 하고 웃음을 터뜨리다가도 그 후에 다시 씁쓸한 맘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래 세상이 그렇지... 각박하고 삭막하단 말야..." 이렇게 말이다.
이런 장면들은 영화 곳곳에서 돌발적으로 튀어 나온다. 그게 바로 코엔형제 영화의 매력이기도 하지만.
영화 파고에서의 살인을 저지른 사람이 시체를 곡물써는 기계에 우겨 넣는 장면처럼 잔혹하지만 웃긴 장면들이 영화 곳곳에서 펼쳐지는 것은 코엔 형제 영화의 독특함이다.
싸이코 페스 [안톤 쉬거]와 도망자 [르웰린 모스]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의 결말은 평범하지 않다. 주인공 격인 [르웰린]의 뜬금없는 죽음과 정의의 이름으로의 응징이 아닌 [쉬거]의 우연한 사고 역시 그렇다.
세상은 정의롭지 못하고, 공평하지도 못하고, 권선징악의 논리는 없다는 살벌함을 코엔형제는 영화를 통해 처절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평안을 위해 불의함을 목격하고도 그 사건에서 한발 빠져 있었던 보안관 [에드]의 일상은 얼마나 평화로왔던가?
그런의미에서 극장에 있던 대다수 사람들이 "뭐야 이건!"이라고 말했던 그 마지막 씬은 가장 인상적이고 매력적인 라스트 씬 이었다고 말할수 있을 것이다.
2008년 2월 8일 금요일
데쓰프루프 (Death Proof) - 타란티노의 통쾌한 여성 복수극
그런데 [데쓰프루프]는 타란티노식 폭력을 여과없이 보여주되 앞의 작품과는 다른 면을 보여준다. 저수지의 개들, 펄프픽션, 킬빌에서의 타란티노 영상이 과거와 현재, 각기 다른 캐릭터들의 혼합 병치된 영상을 동시다발적으로 보여주는 현란한 화면을 보였다면 (화면을 분할하는 만화적인 방법을 스크린에 그대로 옮긴듯한.) 데스프루프의 영상은 2부(두번째 에피소드)의 흑백에서 갑작스레 컬러로 화면이 바뀌는 장면을 제외하면 평이한 구성이고 스토리도 간단하다. 이영화는 그라인드 하우스라는 프로젝트로 로드리게즈의 영화 [플레닛 테러]와 함께 동시상영작으로 기획되었고, 실제 다른 나라에서는 본편보다 재밌는 가짜예고편과 함께 개봉을 했었다. 아쉽게도 우리나라에서는 20분이 더 길어진 필름으로 개봉을 했다.
이어지는 내용
스토리는 전반부 4명의 여성이 스턴트맨 마이크로 부터 집요한 추격을 당하고 데쓰프루프 (사망방지장치)로 무장된 스턴트맨 마이크의 불의의 습격을 당한다는 얘기다, 내명의 친구들은 전원 사고로 죽임을 당하게된다.두번째 이야기도 앞의 이야기와 같은데 앞의 경우와 비슷하지만 이번에는 3명의 여성에 의해 스턴트맨 마이크는 처절한 복수극을 경험하게 되는데, 이 장면이 상당히 통쾌하다.
데쓰프루프의 재미는 후반부의 액션씬에 있다. 전반부의 쉴새없이 이어지는 여성들의 수다를 인내할 수 있다면 후반부의 통쾌한 액션활극으로 관객들은 짜릿한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될것이다.
2008년 1월 23일 수요일
원스(Once) - 노래는 사랑이 되고...
영화는 그다지 특별하지 않은 스토리 이지만 혼신의 힘을 다해 열창하는 글렌 한사드의 노래는 관객에게 감동을 전달하기에 충분하다.
이민자 유부녀 "그녀"와 청소기 수리공이자 거리의 뮤지션인 "그"사이엔 표면적으로는 공통분모가 없다.
하지만 첫 만남에 "그녀"는 "그"가 실연의 아픔에 괴로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그녀"역시 그런 감정속에 있었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일테고, 또한 그러한 경험을 음악으로 승화시켰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그"의 마음을 곧 알아차릴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우연한 만남을 계기로 "그"와 "그녀"는 음악을 함께만들고 곡을 녹음해가며 애틋한 사랑을 가꾸어 간다.
결국엔 서로의 길을 갈수 밖에 없었지만, 그 둘에게는 함께 음악을 완성시켜 나갈 수있었던 가장 찬란하고 행복한 순간이 있었다.
원스는 이러한 과정. 노래가 사랑이 되고, 사랑이 노래가 되는 과정을 담담한 시선으로 그려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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